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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국 경찰의 혼 차일혁 총경 일대기 50 “여자가 머리 빗을 때 거울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혹시 거울로 비행기에 신호를 보내려는 건 아니오?” “아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이 가위도 흉기가 될 수 있으니 함께 압수하겠소.” 아무 혐의점도 발견하지 못한 치안대장은 다시 차일혁을 물고 늘어졌다. “당신 여기서 빠져나간다 해도 동네마다 검문소가 있는데 그 곳 에서 계속 걸릴 거요. 모두들 당신을 차일혁으로 생각하고 조사해 볼 거요.” “그럼, 치안대장 동무가 내가 차일혁이 아니라는 것을 아셨으니 차일혁이 아닌 차갑수라는 증명을 하나 해주시오.” 차일혁은 오히려 그를 귀찮게 만들 속셈으로, 또 다른 검문을 무사히 통과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계속 추근거렸다. 치안대장은 그건 해줄 수 없다며 펄쩍 뛰었다. 차일혁이 그와 실랑이를 하는 동안 키가 큰 치안대원은 아이를 어르기도 하고, “아주머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이가 무척 귀여운데요.”하며 옆에서 줄곧 차 일혁의 아내를 위로해 주고 있었다. 부인은 일단 풀려났으니 그만 떠나자는 듯 안타깝게 차일혁의 등판만 바라보았으나 차일혁은 계속 우겨댈 수밖에 없었다. 그때 키 큰 치안대원이 다시 나섰다. “제가 길을 안내해 드리죠. 이리 오십시오. 산길로 가면 검문을 피할 수 있을 겁니다. 이쪽 고갯길을 넘어서면 금방 전북 익산으 로 들어서게 됩니다.” 그는 친절하게 검문소가 없는 길을 안내해 주었다. 초라한 노무 자로 분장한 차일혁 가족은 다행히 검문소를 피해 논산 삼촌댁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이름 모를 치안대원이 그들의 목숨을 구해준 것이다. 차갑수로 분장하고 일단 논산 광석면에서 몸을 숨 기고 국군이 수복하기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