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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국 경찰의 혼 차일혁 총경 일대기 48 내고 싶었지만 울분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위험해서 더 이상 지체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너의 새언니에게 연락해서 이곳으로 오도록 도와다오.” 소쿠리에 강아지를 담아서 삼베적삼의 농군 아낙차림으로 새벽 에 달려온 차일혁의 부인은 재회의 기쁨을 나누기 전에 와락 울음 부터 터뜨렸다. “제가 그 동안 순자 고모댁에 숨어있지 않았겠어요? 고모도 당 신이 이곳에 있다는 거 다 알아요. 당신이 자수만 하면 목숨을 살 려준대요. 권총 갖고 자수하면 목숨만은 살려준다고 나한테 다짐 했어요.” 그는 애원하는 아내를 별 수 없이 설득하기 시작했다. “자수하느니 이곳에서 도망을 칩시다. 방법이 없지만은 않을 게 요.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논산에 있는 삼촌댁에 가면 몸을 피할 수 있을 거요. 충청도는 전라도 소관이 아니니 내 얼굴 아는 사람 도 없을 테고, 그 곳에서 국군이 다시 북상할 때까지 기다립시다.” 하지만 논산까지 검문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 다. 누이는 전주 여맹위원으로 있는 고모에게 달려가 삼성제사소 노무자 차갑수(車甲洙)라는 증명서를 한 장 얻어왔다. 노무자 차 갑수로 위조하고 당분간 피신해야 했다. 차갑수는 어릴 적 차일혁 의 이름이었다. 그는 아내와 막내를 데리고 논산을 향해 떠났다. 삼례를 지날 때였다. 둑을 지나가는데 농민복장을 한 사내들 서 너 명이 오라고 손짓했다. 그들은 치안대원들로 바깥에 나와서 검문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차일혁 가족을 치안대 검문소로 데 려갔다. “어디 사는 누구요?” 차일혁은 증명서를 그의 코 앞에 디밀었다. 치안대장이라는 자 가 뚫어지게 쳐다보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