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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국 경찰의 혼 차일혁 총경 일대기 44 물품을 내주었다. “창고에 있던 쌀은 다 떨어지고 우리도 가진 게 얼마 안돼요.” 차일혁과 대원들은 누이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한 보퉁이 씩 짊어졌다.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잠을 깬 사돈이 “게 누구요?” 하며 방문을 열었다. 누이가 난처해하며 앞으로 나서서 우물쭈물 거리자 차일혁을 알아 본 사돈이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뛰어나왔다. 기어이 바래다 주겠다는 사돈을 동네 어귀에서 돌려보냈다. “이곳은 저들이 가장 날뛰고 있는 광곡부락이라오. 조심해서 살 펴가시오.” 사돈의 당부를 뒤로하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길 때였다. “동무들 누구요?” “서라.” 차일혁 일행은 숨돌릴 틈도 없이 쌀자루를 팽개치고 냅다 튀었 다. 공교롭게도 인민군 치안대원 잠복조에게 걸린 것이었다. 뒤이 어 총성이 들렸다. 한동안 총성이 계속되었다. 왼팔에 뭔가 뜨거 운 것이 스쳤다고 느낀 순간 신경이 마비된 것처럼 팔이 앞으로 모아지지 않았다. 엽총이 왼팔을 관통했고 붉고 뜨거운 피가 흘러 내렸다. 다행히 사격지점에서 벗어나자 그들은 대나무밭에 몸을 숨겼다. 두 부하들은 그나마 무사한 것 같았다. 박세종이 차일혁 의 상처를 보더니 자신의 저고리 한 섶을 찢어 지혈을 해주었다. 하지만 이미 많은 피를 흘렸고 뛰어내리다 왼쪽 발목까지 삐어 더 이상 걸을 수도 없었다. 부하들은 “안 되겠습니다. 어떡해서라도 사돈댁에 가서 치료를 받도록 해야겠습니다.”라고 했지만, 차일혁은 오히려 부하들에게 또 다시 발각되는 경우 자신을 버려두고 재빨리 달아나도록 명령 하고 의식을 수습하여 권총을 장전했다. 언제 적이 불쑥 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