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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역사의 부름 앞에 41 서로 뜨거운 피가 흐르는 손을 굳게 잡았다. 차일혁은 대원들에게 장비와 무기를 나누고, 임실군 신덕면 조 월리 뒤편 경각산으로 들어갔다. 마침 눈에 띈 숫골에 들어가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새로이 결의를 다졌다. 우리의 고장을 사수하 자,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자며 호기 있게 노래를 불렀다. “사나이로 태어나 나라와 겨레를 위해 떳떳이 싸우다가 사랑하 는 고향 하늘 아래에서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차일혁은 품에 간직한 태극기를 꺼내 무명지를 깨물어 대한민 국(大韓民國)의 한일(一)자를 그었다. 이학희가 우획의 빗선을 그 었다. 이어 정우명(鄭雨明), 김규수(金圭洙), 박세종(朴世鐘), 김길 제, 이영룡 등의 차례로 손가락을 깨물어 피로써 맹세했다. 동지 들은 몸은 달라도 마음만은 태극 깃발 아래 하나로 굳게 뭉친 것 이다. 28) 대규모의 적이 밀려와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후퇴할 수 있는데도 적과 싸우기 위해 남겠다고 결정하는 것이 쉬운 일일까? 대부분의 사람 들은 전열을 가다듬기 위해 일단 후방으로 철수했다가 앞날을 기약하자 고 할 것이다. 그러나 차일혁은 후퇴하여 후일을 도모하자는 제의를 단 호하게 거부하고 죽을 각오로 기꺼이 남아 적과 싸우려는 대의를 택했 다. 참으로 힘든 결정을 내린 것이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용기과 희생정신, 조국을 위기에서 구하겠다는 충성과 애국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과감하고도 위대한 결단력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혼자만의 독단으로 전체를 잔류시키지 않고 희망하는 사람들 에게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줌으로써 다른 사람의 생명과 의사결정을 존중해 주는 넓은 이해와 관용의 마음도 보여주고 있다. 28) 김규수 옹은 옹골연 유격대가 대한민국 최초의 아군 유격대였고, 당시 태극기에 혈서 를 쓴 것이 남아 있다면 국보감이 되었을 거라며 매우 자랑스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