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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국 경찰의 혼 차일혁 총경 일대기 40 한포기, 나무 한그루도 절대 적에게 그냥 넘겨줄 수 없다. 후퇴해 서 자구책을 강구하느니 차라리 사랑하는 고향을 베개 삼아 눈을 감는 대의를 택하겠다. 나와 뜻을 같이 할 동지는 없는가?” 그는 구국의용대에서 무기가 없는 사람은 모두 해산시키고 정 예라고 생각되는 37명만으로 유격대를 조직했다. 유격대의 무기는 99식 장총 20정, 칼빈소총 6정, 44식 장총 9정, 권총 2정이었고, 장 비는 등사용구와 쌀 두 가마니, 공작담배 두 보루 등과 15청년방 위대에서 보관 중이던 약간의 돈이 고작이었다. 경각산을 근거지로 삼기로 작정하고 보광재(전주시 완주군 구이 면 소재)를 넘어 평존 이학희(李學熙)의 큰집에서 저녁을 먹고 쌀 과 미숫가루, 농민복장 등을 얻어 산을 향했다. 도중에 육모정이 있는 연못가에 모여앉아 다시 한번 대책을 논의했다. 이슬비가 구슬프게 내리는 가운데 멀리 전주시내에서는 인민군 이 입성하는 만세소리가 들렸다. 현역출신의 부대장인 안균섭(安 均燮) 중위가 후퇴 문제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게릴라전으로 적과 대항한다는 것은 그 뜻은 좋지만, 합리적으 로 생각해 볼 때 전 동지가 일시 후퇴하여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 전에 참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한번 마음을 굳힌 이상 더 이상의 망설임은 필요 없었다. 차일 혁은 단호히 거부했다. “우리 동지들이 이곳에 온 목적은 단 한 가지. 유격전으로 적과 대항하기 위해서이다. 안 동지의 말도 일리는 있으나 나는 이곳에 남겠다. 안 동지와 뜻을 같이하는 동지는 적이 길을 차단하기 전 에 빨리 이곳을 떠나라.” 의견은 둘로 나뉘어 철수와 유격전으로 의견이 분분했다. 장시 간에 걸친 토론 끝에 19명이 남기로 마음을 굳혔다. 죽지 말고 다 시 만나자며 차일혁은 헤어지는 사람들을 보내고, 남은 사람들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