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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역사의 부름 앞에 39 것이다. 한반도의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세상은 다시 차일 혁을 찾았다. 서해안 지구사령관 신태영 소장으로부터 7월 2일 작 전명령이 내려왔다. 차일혁은 “15청년방위대 정보처장27) 차일혁 소령 책임하에 유 격전에 필요한 인원을 선발하여, 육군 제7사단 직속으로 ‘구국유 격대’를 편성, 아군이 반격해올 때까지 산악에 거점을 확보 은거 하면서, 전주시를 중심으로 북괴군의 동향과 시민들의 북괴군에 대한 협조사항 등을 분석하고, 국민들의 대 북괴감정을 교란시키 는 심리전을 전개하라”는 작전명령을 받았다. 그는 7사단 직속 구국유격대장이 되어 청년방위대와는 별도로 전주와 전북에서 장정들을 모았다. 그러나 국군은 전쟁에 대한 사 전대비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적은 곧 방어선을 돌파하고 전북까 지 밀고 내려왔다. 7월 17일 병력과 무기 부족으로 강경(금강하구) 에서 방어하고 있던 아군과 전북경찰대의 방어선이 무너지고 19 일 이리가 함락되었다. 청년방위대도 국군을 따라 함께 후퇴 준비를 했다. 그러나 차일 혁은 고향을 사수하기로 결심하고 대원들을 불러 모았다. 적군이 고향을 짓밟을 것이 뻔한 상황에서 그는 고향을 버리고 갈 수 없 었다. “동지들, 북괴의 불법남침으로 조국의 운명은 풍전등화의 위기 에 놓여 있다. 비록 후퇴명령이 내려졌다 할지라도 전북을 적의 손에 고스란히 넘겨준다는 것은 사나이의 고집 상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고장 전북은 탐관오리의 학정과 일제의 침략에 과감히 항거한 동학혁명의 자랑스러운 얼을 이어받지 않았는가? 뜨거운 선열들의 피가 우리의 혈관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한, 풀 27) 최초 15청년방위대 총무처장에서 정보처장으로 보직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