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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국 경찰의 혼 차일혁 총경 일대기 302 기 자신을 캐리커처할 수 있는 유머 감각도 있었다. 구천동작전에서 실패한 뒤 그는 부하 중대장의 작전실수를 전 북도경 경비과장에게 뒤집어 씌었다. 실탄보급이 늦어서 엘리트 중대 하나를 잃었다고 먼저 권총을 빼들고 쇼를 벌였다는 것이었다. 그런 자신의 연기를 ‘똥 싼 놈이 성낸 꼴’이라고 표현해야 직정이 풀렸다. 그에게서는 어딘지 모르게 일본군대 하사관 출신의 지휘관과는 다른 분위기가 있었다. 그때부터 차 대장은 만주에서 무슨 일을 한 사람인가? 해방 전 차대장의 행적에 관한 의문이 꼬리표처럼 그를 따라다녔다. 적장 이현상에게 후한 장례를 치러준 것은 일본군대 매뉴얼에 는 없다. 디엔 비엔 푸의 프랑스군 전몰장병에게 위령비를 세워준 베트민에게 더 가까운 차 대장의 사자(死者)에 대한 예의는 ‘생필 사(生必死)하고 사필생(死必生)하라’는 부대훈의 실천 이상의 무엇 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교교한 달빛을 받으며 무풍장으로 후퇴하면서 불쑥 내뱉은 ‘시 련은 또 있을 것’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한 마디 역시 독안에 든 쥐(빨치산)를 잡는 고양이(전투경찰)의 고양된 허세라기보다는, 김 일성으로부터도 버림받은 남한 빨치산의 운명을 내다본 달관한 도인의 독백이었을지 모른다. 며칠 전 연길에서 작가가 가져온 사진은 저명한 독립운동가 김 학철 등과 반세기 전의 차 대장이 청년시절에 팔로군 옷을 입고 마주 서 있는 모습을 담은 것이었다. 그 한 장의 사진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일본 제국주의를 한반도에서 몰아낸 다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현실적으로 두 갈래길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