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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국 경찰의 혼 차일혁 총경 일대기 300 그날 밤 대대본부로 합류한 거의 유일한 생존자인 나는 작전참 모에게도 참담한 ‘전황’을 보고하지 못했다. 18대대 비방의 카드인 ‘똥개 녀석들’의 패주소식을 들은 차 대 장은 곧 함구령을 내린 것이다. 1951년 11월 26일 미명. 다시 전열을 가다듬은 차 대장 부대는 일제히 반격에 나선다. 해지기 전에 남덕유산을 점령한 우리에게 적은 야간기습을 시도했지만 경찰복을 입은 시체 한 구를 남겨둔 채 사라졌다. 덕유산 일대에서 적정이 없어진 것을 확인한 우리는 중화기는 고지에 나두라는 대대 작전명령을 어긴 채 좁은 계곡에 집결, 스스로 독안에 든 쥐떼가 되고 말았던 주막담거리로 다시 내려가 보았다.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삼공리에서 내려온 계곡의 물은 이 지점에서 직각으로 꺾이어 나제통 문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얕아진 계곡의 바닥에는 제대로 응사해보지도 못하고 버린 우리 기관 총이 그대로 있었다. 중대장의 신분증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다 발각된 김병구 군은 결박 된 채 누워 있었다. 혀를 깨물어야 했을 만큼 흑심한 고문을 당한 끝에 사살된 것이었다. 지금도 착하디착한 미소가 생생히 떠오르는 그의 입가에서 그때 내가 찾은 것은 한 마리의 구더기였다. 작전이 여의치 못하여 내장사 경내에 죽지 않고 남아 있던 이발 사의 한쪽 귀라도 잘라야 실적이 오를 성 싶은 봄 가뭄이 들면, 총잡이가 다 된 사나이들은 발정기의 고양이처럼 다스리기 어려 워지곤 했다. 그럴 때 차 대장은 결사대를 모집했다. 특별 급식이 나오는 날, 결사대는 고기 한 점을 더 얻어먹는 특 전이 주어지고 다른 대원들보다 한질 나은 샛별담배를 지급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