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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록 299 한 영웅의 죽음 나는 지금 파카 만년필로 이 글을 쓰고 있다. 42년 전만 해도 이런 만년필은 사치품이었다. 우리 부대에는 미군 고문관과 가까운 대대장이 꼭 하나 가지고 있었다. 독립대대장 차 대장을 중심으로 서남지구 대(對) 게릴라 작전을 위해 창설한 제18전투대대의 무기는 일본군, 인민군 패잔 병이 두고 간 재생중고품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무주 구천동 작전에서 적탄이 탄창 한가운데를 뚫고나가 스프 링이 망가지는 바람에 반납한 나의 총 역시 일제 단발소총이었다. 그러면서도 적을 얕보았던 우리는 이영회 후속부대가 쳐놓은 덫에 걸렸다. 부대창설 이후 최대의 기습반격에 말려든 특공중대는 중대장의 황급한 후퇴명령을 귓전으로 들으며 삼공리 북쪽고지에 진을 친 대대본부로 빠지려고 했다. 전원이 자원한 최정예 결사대의 일대 패주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를 포위한 빨치산들은 자동화기로 중대의 예봉을 일시에 꺾었다. 차 대장 부대의 화력과 장비는 열악하기 짝이 없는 데다 이날은 예비마저 없었다. 마치 무기 체계를 교전 쌍방이 맞바꿔치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 는 밀렸다. 겉으로 보면 공비끼리 서로 총싸움을 벌였나 싶은 광 경이기도 했다. 전투경찰대원 일부는 인민군 패잔병보다 더 낡은 누더기를 꿰 매 입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