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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록 297 전멸했다. 사실상 지리산에 대한 대규모 작전이 끝난 것이다. 1955년 4월 1일 간단한 공고문이 지리산 일대에 나붙었다. “공고. 이제는 평화의 산, 그리고 마을 안심하고 오십시오. 지리 산 공비는 완전히 섬멸되었습니다. 단기 4288년 4월 1일 서남지구 전투사령부 백” 이승만 대통령이 1953년 2월에 내린 엄명 “1년 내에 공비토벌을 완료하라”는 지엄한 명령은 이루어진 것이다. “지리산 평정 없이 는 남한의 평화 없고, 이현상의 생포 없이는 지리산의 평화는 없 다.”는 생각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여기서 서남사 전투대장 차일혁의 존재가치가 빛을 뿜는다. 그 후 그는 진해경찰서장을 거쳐 공주서장으로 전근, 한때 평화 와 안정을 누리다가 뜻하지 않게 금강의 큰 물결에 짧은 생애를 마감한다. 1958년 8월 9일의 일이다. 겉으로는 수영하다가 급한 물살에 빠져 익사한 것으로 되었지만, 인간적인 고뇌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았는가 추측도 나돌았다. 이미 신변정리를 끝냈다 는 것이 사후에 밝혀졌으니 말이다. 38년간의 짧은 생애에 그것은 너무나 고귀했다. 자살이냐 아니냐는 본인만이 알 수 있는 비밀이 지만,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다만 평소 그가 밝힌 사생관이 일말의 열쇠가 된다. 아직 빨치 산 토벌작전이 한창일 때, 어느 친구가 “공비토벌이 끝나면 무엇 을 하실랍니까?“하고 물었을 때 그의 답변은 담담했고 의미심장 했다. “나는 공비토벌만 끝나면 깊은 산속의 절에 들어가 이념의 대결 속에 짓밟힌 무주고혼의 명복을 빌고 내 몸에 스며든 피비린내를 씻고 싶습니다.” 지리산 공비를 평정하고 남한의 평화를 가져온 영웅도 따지고 보면 한낱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 50년 우리가 누리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