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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록 295 의 평화가 없고, 이현상의 생포 없이는 지리산의 평정 없다.”고 단 언하였다. 이 대통령은 심지어 이현상을 직접 만나 남한의 평화를 이루겠 다는 결의까지 표시했다. 이현상의 존재가치 비중은 더 이상 웅변 할 수 없다. 이 대통령의 판단은 옳았다. 1953년 9월 17일 차일혁이 이끄는 서남지구 경찰대(서전사) 제2연대는 지리산 빗점골 전투에서 이현 상과 몇몇 빨치산 간부들을 사살하는 개가를 올렸다. 아쉬운 것은 이 대통령의 지시대로 이현상을 생포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닐까? 그 무렵 북한에서는 박헌영, 이승엽 등 남로당파가 종파분자로 몰려 실각했고, 박헌영의 직계파였던 이현상 역시 반당 세력으로 몰려 기를 펴지 못하고 있었다. 전쟁에 패배한 책임을 뒤집어 씌어 반대파를 후려치는 당파주 의가 공산세력을 약화시키는 것도 지리산 깊숙이 숨어있는 이현 상의 목을 재촉한 한 단면이었다. 그러나 영명한 차일혁 부대장의 지휘하에 일사불란한 전경부대들이 세운 찬란한 공적이 아닐 수 없었다. 이현상의 시체는 서울로 이송되어 창경원에서 전시되기까 지 했으니 그의 죽음의 뜻을 이해할 수 있다. 결국 그의 시체는 지리산으로 반송되었는데 여기서 차일혁이 아니면 생각할 수 없 는 사태가 벌어졌다. 죽은 ‘적장’에게 베풀어준 최고의 예의였다. “비록 이현상의 공비의 괴수였지만 그도 이제 한 인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공비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 마지막 가는 길에 정중히 예를 갖추어 줍시다.” 1953년 10월 8일 차일혁 부대 본부가 있던 섬진강 백사장에서 이현상의 시체가 화장되었고 스님의 독경소리와 함께 하얀 재가 되었다. 특기할 것은 유일한 유품이라고 할 수 있는 그가 끝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