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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국 경찰의 혼 차일혁 총경 일대기 294 다. 사상과 이념에 맞대결함으로써 전선과 후방이 가려지지 않는 물리적인 전투가 지리산을 중심으로 되풀이되었다. 게릴라전은 전 후 5년에 걸친 빨치산과 빨치산 토벌대 간의 또 하나의 전쟁이었 다. 두 사람의 주인공이 확연히 등장한다. 남의 차일혁과 북의 이현상. 차일혁은 일제말엽 10대 후반의 젊은 몸으로 중국에 건너가 황 포군관학교에서 단련받고 2차대전 막판에는 팔로군 무정장군 휘 하의 항일 게릴라전에 참여한다. 해방 후 그는 한 때 , 국군창설에 참여하였고, 이어 대부분 일선 경찰서장이나 전투경찰부대장으로 빨치산 부대소탕에 청춘을 불살랐다. 한 인간의 기구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팔로군 조선의용대 출신이 고국에 돌아와서는 일관해서 공산게릴라와 싸웠고, 지리산 에 뿌리내린 빨치산의 두목 이현상과 일대결전을 벌였다니 공산 독재를 일찍 포기하고 자유민주주의를 몸으로 실천한 형안이 그 에게 있었다. 차일혁과 이현상의 좌우간 라이벌은 1953년 9월 17일 이현상이 사살됨으로써 차일혁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이현상은 차일혁보다 15년 연상의 산전수전 다 겪은 공산주의 자로서 이 산 저 산을 누비며 문자 그대로 신출귀몰한 게릴라 부 대의 우상이었다. 1953년 2월 이승만 대통령은 경무대에 모인 경 찰수뇌부들 앞에서 1년 이내에 후방의 공비를 평정하라고 엄명하 고 전투경찰은 군에 간섭 없이 독자적으로 공비토벌에 매진하라 고 지시했다. 1953년 7월 휴전이 성립되지만 휴전선에서 총성이 멎었을 뿐, 지리산에서는 게릴라 전쟁이 더욱 불을 뿜었고, 전라도와 경상도 가 만나는 지리산 골짜기는 최후 결전장으로 무르익었다. 그때 이 대통령은 특별담화를 발표, “지리산 평정 없이는 남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