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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전쟁은 끝났지만 283 공주는 백제의 고도로 문화유적이 곳곳에 적지 않게 존재하는 곳 이라 제방이 무너졌더라면 공주의 문화재가 몽땅 수몰될 뻔하였다. 이 제방 수축 작업은 경찰서장인 차일혁이 직접 지휘를 하여 화 제가 되었고, ‘요새 몽둥이 경찰관이 있는 반면에 이런 공복된 모 범적인 경찰관도 있다고 중앙에서까지 칭찬이 자자하다’는 논평이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73) 차일혁은 공주 공산성에 올라가는 것을 좋아하였다. 가족이나 지인들과 함께 놀러가기도 하고 홀로 찾기도 했다. 금강의 푸른 물줄기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공산성 광복루에 앉아 담소를 나누 거나 차를 마셨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게 뜬 여름 밤, 차일혁은 가족들을 이끌고 공산성 광복루에 올라갔다. 까만 허공에 덩그러니 크게 걸린 달은 금강에 교교한 빛을 드리우고 있었다. 차일혁은 12살이 된 아들을 바라보았다. “내가 네 공부를 끝까지 못시켜 미안하다. 공부는 다 시켜야하 는데...” 아들은 아버지의 그 영문 모를 소리에 어리둥절했다. 차일혁은 말을 이었다. “너는 나중에 가정에 충실해라. 남자는 세상 무엇보다 자기 가 족을 책임지고 잘 돌볼 줄 알아야한다. 그래야 남자다.” 차일혁은 공부를 많이 못시켜주어 미안하다고, 가족을 잘 돌보 고 책임져야 한다고 다시 한번 말했다. 그것은 차일혁의 유언이었 다. 광복루에서 가족들과 마지막으로 달밤의 소풍을 즐긴 지 꼭 열흘 후에 그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고 만다. 1958년 8월 9일 토요일 공주 금강나루 백사장은 한산했다. 한 73) 중도일보, 1958. 7.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