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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전쟁은 끝났지만 281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는 노력 을 많이 했고, 그동안 가족에게 신 경 쓰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며 때 로는 한스러워했다. 그는 어린 아 들에게 남자는 가정을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차일혁은 공주시의 기관장들과 관사에서 가끔 회식자리를 마련하 곤 했다. 1957년 4월 20일 토요일 오후, 많은 사람들이 서장관사로 몰 려들었다. 공주지원장, 공주지청장 송 某, 공주읍장 권 某, 공주 교육감 채 某, 공주신문 기자단장 임 某, 공주병원장 김 某, 공주지청 서기과장 윤 某 등의 손님들과 공 주경찰서 간부와 경찰관들이 한 자리에 모여 봄날의 흥취를 만끽 했다. 공주지청장 송 某는 차일혁이 서전사에 있을 때 남원지청장으 로 재직하여 그를 잘 알고 있었다. “서장님께서 지리산에 계실 때부터 명성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지요. 공비토벌에 큰 공을 세우셨지요? 이렇게 관사로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서 모이니 더 기쁩니다.” 당시엔 고위공직자나 정치가들의 회식이나 술자리 모임은 보통 고급 요정이나 술집에서 하기 마련이었다. 차일혁은 공직자들의 그 같은 행태를 따라하지 않았고 회식장소로 늘 관사를 이용했다. 공주의 기관장들은 청렴한 경찰서장의 이미지가 강한 차일혁을 신뢰했으며, 그의 솔직 담백한 성격도 맘에 들어 했다. 이날의 회식을 보면, 법조계, 의료계, 교육계, 언론계 인사들도 찾아들었고, 시골읍장과 말단 경찰관까지 자연스럽게 어울렸다는 ▲공주서장 차일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