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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국 경찰의 혼 차일혁 총경 일대기 280 서른일곱. 젊고 유능한 총경 차일혁의 앞날에 탄탄대로가 펼쳐 질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리산 공비토벌에 큰 공을 세웠고, 충주에서 민생 치안과 행정능력을 인정받았으며 가 는 곳마다 청렴하고 절도있게 기강을 바로 세웠던 그에게 관운이 트일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러나 진해서장으로 부임한 후부터 차일혁에 대한 투서가 심 계원71) 에 날아들기 시작했다. 그가 일제시대 중국에서 팔로군으 로 복무했고, 토벌대장 시절 사상이 의심스러운 행동을 했으며 그 가 공산주의자라는 내용이었다. 72) 차일혁이 빨치산 포로들에게 온정적이었던 점을 문제 삼았는데 그가 포로들을 죽이지 않고 풀 어주어 지하공작을 하게했다는 것이다. 즉 차일혁이 이적행위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차일혁은 이 문제로 몹시 괴로워한 것으로 보 인다. 유족의 증언에 의하면 차일혁은 계속 사찰을 받았고, 이 무 렵부터 신경이 매우 날카로워져 밤에도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투서내용은 현재 확인되지 않으나, 진해경찰서장으로 부임한지 7개월 만에 그는 좌천되어 충남경찰국 경비과장을 거쳐 1957년 3 월 공주경찰서장으로 발령받는다. ❚공주에서 보낸 마지막 시간들 공주경찰서장으로 부임한 후 차일혁은 예전과는 다르게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낸다. 빨치산 토벌대장 시절에는 전투를 하느라 집 에 들어간 날이 드물 정도였고, 충주, 진해경찰서장 시절엔 항상 공무에 바빠 집안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공주에 와서 그는 71) 오늘날 감사원 72) 유족의 증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