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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전쟁은 끝났지만 277 학생들은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지만 배우고자하는 열의 만은 뜨거웠다. 그 중에서도 원주에서 피난 온 초등학교 5학년을 중퇴한 김 某 군과 한 某 군은 차일혁을 원장아버지라 부르며 잘 따랐다. 하루 종일 고된 일을 마치고 온 아이들이 졸지 않고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것을 지켜보며 차일혁은 기뻐했다. 그는 5년간 빨치산들 과 전투를 하면서 피로 얼룩진 몸과 마음을 씻고자 했으며, 새로 운 인생을 시작하는 기쁨을 느끼고 싶어 했다. 차일혁은 자라나는 아이들과 함께 평화의 시대에 마음껏 평화로움을 누리고 싶었다. 충주에 비료공장 건설이 추진되고 있었다. 충주비료공장은 1955 년 5월 착공되어 1959년 9월에 준공되었는데 변변한 경제력이 없 던 우리나라에 1,995만 5천 달러라는 거액의 외채와 원화 1억 5천 만원의 건설비가 소요된 대규모 공사였다. 당시에는 가장 큰 규모 의 국내 기업체가 맡아 건설하게 되었다. 그러나 착공 초기부터 ▲충주경찰서장 시절(충주농업학교 3・15 경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