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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국 경찰의 혼 차일혁 총경 일대기 276 게 해서라도 이 학원을 발전시켜 집도 없고 공부도 못하는 가여운 부랑아들의 집이 되고 낙원이 되고 희망이 되는 등불이 되도록 하 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특이하게도 경찰서에서 만든 이 청소년 학교는 개설 당시 9세부 터 18세까지의 어린이, 청소년 60명의 학생이 공부를 하였다. 매 일 저녁 3시간의 수업을 했고 3년 편제였다. 교육내용은 초등학교 교과과정이었다. 고급반인 1반은 남아 13명, 여아 4명의 학생으로 구성되었고, 2반에는 남아 30명, 여아 14명이 수학하고 있었다. 직 업별로는 구두닦이 25명, 공용아 8명, 신문배달 3명, 점원 6명, 사 환 3명, 무직 15명이었다. 차일혁은 전쟁 이후 도시에 떠도는 소년범의 증가로 고민하였 다. 그는 거리나 다방에서 흔히 마주치는 구두닦이 소년들이 신체 가 멀쩡하고 두뇌도 명석함에도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 사람들 의 멸시를 받는 것을 몹시 안타까워했다. 그 아이들이 자라면 국 가의 인재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빈곤 속에서 예비 범죄자로 전락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어 범죄를 예방하 는 것 또한 경찰의 역할이라고 생각한 차일혁은 용기를 내어 특유 의 추진력으로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학교를 개설한 것이다. 학교 교사는 일단 경찰서 직원 중 사범학교 졸업생과 교원 면허 를 받은 사람을 뽑아 가르치게 했다. 경찰서 직원들의 월급에서 100환 미만의 금액을 모금하여 학생들의 공책, 연필 등 학용품을 구입하고 차량 운행 등의 운영비로 조달했다. 차일혁은 학교를 빌 미로 기부금을 거두지 못하게 했다. 그는 지역사회에 민폐를 끼치 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썼으며, 운영비는 자체 조달을 원칙으로 했다. 68)‘신문에 난 전투기록 모음집’, 후암,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