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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아! 지리산, 그리고 이현상 271 동 삼공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패배를 안겨주었던 이영회 역시 2연대 수색대에 의해 11월 27일 사살되는 등 빨치산 간부들이 사 살되어 지리산 빨치산들은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는 지리 산 빨치산 토벌의 종료를 의미했다. 1955년 4월 1일. 지리산 일대에는 평화가 왔음을 알리는 서남지 구전투경찰사령부 명의의 공고문이 나붙었다. <공고> 이제는 평화의 산, 그리고 마을 안심하고 오십시오. 지리산 공비 는 완전히 섬멸되었습니다. 단기 4288년 4월 1일. 서남지구전투경찰사령부 백 여순반란사건이 이후 7년 가까이 계속되었던 지리산 공비토벌 은 1955년이 되면서 완전히 매듭지어지고 지리산에 사람들의 출 입이 자유로워졌다. 1955년 6월 1일. 서전사 박병배 사령관은 광한루 경내 충혼각에 다음과 같은 헌시 한 편을 바치고 그 헌시를 화강암에 새겨 구천 을 헤매고 있을 영령들의 진혼사로 삼았다. 헌시가 새겨진 그 비 석은 뱀사골 충혼각에 안치되어 오가는 이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 고 있다. 67) 67)‘아 ~ 살아 있다! 대한민국 경찰의 혼’, 대한민국 참전경찰유공자회 편저, 월간조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