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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국 경찰의 혼 차일혁 총경 일대기 270 사에서는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화장했다고 비난했다. 이현상의 시신에 박힌 총알까지 확인한다며 야단법석을 떨었던 군 측으로 서는 차일혁이 이현상의 시체를 화장한 것은 증거 인멸이라며 트 집을 잡았던 것이다. 경찰에서도 일부 간부들은 공비괴수를 정중 히 예를 갖춰 화장해 주었다고 못마땅해 하기도 했다. “차 총경! 빨갱이의 시체를 화장해 주었다면서요? 그것도 중을 불러 염불까지 하게하고.” 사령부에서 만난 모 과장이 비꼬는 듯이 말을 내뱉었다. 차일혁 은 화가 치밀어 큰 소리로 맞받았다. “죽은 뒤에도 빨갱이고 좌익이란 말입니까? 이제 지리산의 공 비토벌도 거의 다 끝나가고 있소. 나 역시 많은 공비들을 토벌했 지만 그들 역시 같은 민족이 아니오? 내 고향이웃일 수도 있고 내 친척일지도 모르는 것 아니겠소? 당신은 죽어서까지 공비 토벌하 러 다니겠소?” 누가 감히 빨치산 대장 이현상의 시신을 거두어 화장해 줄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차일혁이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동족끼리 죽고 죽이는 전쟁을 시작한지 3년. 분노와 복수로 얼룩진 한반도에서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을 그는 하고야만다. 철두철미한 공산주의 자이자 남한 사회를 뒤흔들었던 빨치산 대장의 장례를 치러준다는 것. 이는 좌익의 시신만 찾아가도 곤욕을 치르던 시절, 온갖 오해를 살 수 있는 일일 뿐만 아니라 사상적 의심마저 받을 수 있는 매우 위험한 행 동이었다. 그러나 차일혁은 개의치 않고 이현상이 마지막 가는 길에 예 의를 다해주었으며 자신의 철모에 뼈를 빻아 손수 강물에 뿌려주기까지 한다. 차일혁은 적장에 대한 최고의 예우를 보여주었다. 피아(彼我)를 가리지 않는 뜨거운 인간애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그는 믿은 것 같다. 빛나는 용기와 드넓은 포용력과 묵묵한 실천 앞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남한 빨치산의 총수였던 이현상이 죽었고, 차일혁에게 무주구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