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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아! 지리산, 그리고 이현상 269 았다. 그리고 M1소총으로 곱게 빻아 섬진강 물에 뿌렸다. 탕. 탕. 탕. 차일혁은 권총을 꺼내 허공을 향해 3발을 쏘았다. 이현상이 마 지막 가는 길에 붙이는 조사(弔辭)였다. 지리산에서 숨져간 수많 은 원혼들에게, 초라한 모습으로 삶을 끝낸 이현상에게 보내는 조 사였다. 다시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없기를, 우리 민족이 평화롭게 살기를 기원하는 차일혁의 외침이기도 했다. 거친 역사의 소용돌 이 속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공산주의자 이현상이 한 줌 재 가 되어 섬진강을 따라 흘러갔다. 차일혁은 이현상의 수첩에 적혀 있던 한시를 떠올렸다. 66) 智異風雲當鴻動 伏劒千里南走越 一念何時非祖國 胸有萬甲心有血 지리산에 풍운 일어 기러기떼 흩어지니 남쪽으로 천리 길, 검을 품고 달려왔네 내 마음에서 조국을 잊어본 적 있었을까 가슴에는 철의 각오, 마음 속엔 끓는 피 있네 한시도 조국을 잊은 적 없다는 마음과 끓는 피는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그는 죽어서도 그 열망을 놓지 않을까? 차일혁 은 이현상의 영혼이 평화롭게 잠들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의 명복 을 빌며 다음 세상에서는 서로 총구를 겨누어야 하는 적으로 만나 지 않기를 염원했다. 차일혁이 이현상의 시체를 화장해 준 일이 알려지자, 국군 남경 66)‘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의 수기’, 후암,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