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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국 경찰의 혼 차일혁 총경 일대기 262 리를 듣던 그였다. 젊은 나이에 박헌영과 함께 조선의 공산주의 운동을 이끌며 사회주의 이념을 신봉하던 그에게 종교라는 것이 스며들 틈이 있었던 것일까. 북에 있던 동지들이 대부분 숙청 당 하고, 외로이 지리산에 남아 투쟁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무상함을 느꼈던 것일까? 차일혁 역시 전장을 돌아다니면서 염주를 지니고 있었다. 염주 를 굴리면서 상념에 잠기는 것이 오랜 습관이었고,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온갖 번뇌를 염주로 삭이곤 했다. 염주를 굴리며 토벌대 와 공비로 나뉘어 동족끼리 죽고 죽이는 싸움터에서의 악연들이 이 세상만으로 끝나기를 빌었다. 이현상이 소지하고 있던 권총은 매우 작아서 호신용으로나 쓸 수 있는 것이었다. 보급이 전혀 없던 빨치산들에게는 그 특수 소 련제 권총이 실탄을 구할 수 없어 무기로서는 전혀 가치가 없었 다. 평당원으로 강등되어 있던 그였기에 가지고 있던 작은 특수 소련제 권총은 그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물건인 듯 했다. 권총을 이리저리 살피던 차일혁은 그의 손때가 묻은 가래와 권 총을 왠지 간직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부터 겨루어 보고 싶었던 적장이었지만, 이현상이 막상 사살되고 나니 차일혁은 오 랜 친구가 멀리 떠나버린 것처럼 허전해졌다. 이현상과의 인연을 생각하며 그의 유품을 간직하고 싶었다. 차일혁은 수색대장 김 某를 불러 이현상의 유품에 권총이 있었 다는 것을 비밀로 붙이도록 하고, 다른 수색 대원들에게 권총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설치 않게 했다. 보고를 받고 달려온 서전사 작전과장에게도 권총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1953년 9월 20일. 김 작전과장은 이현상의 시신과 그의 유품을 가지고 경무대로 향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죽은 이현상은 보지 않겠다고 했다. 이승만은 이현상을 생포하여 정치적으로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