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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아! 지리산, 그리고 이현상 257 인 김지회 부대의 송 某 부대원 7명이 나타났다는 정보를 입수한 618부대 1소대가 이를 추격, 1183고지 남방에서 아침을 먹고 있던 그들을 발견, 기습을 가해 부부대장김 某와 제5지구대장이 해체되 기 이전에 이현상의 호위병이었던 김 某를 생포하고 총기 2정을 노획하였다. 김 某와 김 某는 제5지구당이 해체되기 전 7인조의 이현상 호위 병들로, 신변안전을 위해 경상남도당 부대에 은신하려고 전라남도 당 부대를 떠나 이동 중이었다. 심문 결과, 둘에게서 다시 한번 제 5지구당의 해체와 이현상이 평당원으로 강등 당해 빗점골에 은신 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박 某의 친위대 속에 둘러싸여 사면초 가 속에서 신변의 위험을 느끼고 있는 반감금 상태에서 그나마 시 종일관 친밀한 관계였던 이영희가 있어 의지할 수 있는 경상남도 당으로 조만간 가게 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영회는 여순 반란사건의 주역인 14연대 출신으로 빨치산 2병단 시절부터 이현 상의 휘하에 있었으며, 빨치산 남부군 시절에는 57사단장을 맡은 바 있었다. 이현상에게 충실했던 군사간부는 주로 국군 14연대 반 란군 출신들과 같이 전쟁 전부터의 소위 舊 빨치산이었고, 정치간 부는 前 코뮤니스트, 즉 재건 조선공산당 이래의 동지들로서, 주 로 충청남북도·경상남북도 출신들이었다. 반면에 북한군 낙오병과 낙오 기관원 그룹, 지역적으로 전라남북도당 부대들은 이현상에게 비교적 반발적이었다. 차일혁은 김 某와 김 某를 2연대 수색대에 편입시켰다. 이로써 수색대는 33인이 되었고, 이들 중 빨치산 출신이 아닌 자는 최순 경(崔順庚)뿐이었다. 한편, 9월 6일 빗점골에서는 다시 제5지구당 조직위원회가 개최 되어 제5지구당 결정서 제10호가 채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