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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아! 지리산, 그리고 이현상 255 “우선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 하질 않소. 어서 서두르시오.” 차일혁은 비록 공비일망정 그를 살리고 싶었다. “연대장님, 죄송합니다. 누가 공비에게 피를 줄 리는 없고, 급한 대로 연대장님의 피를 뽑겠습니다.” 차일혁은 피를 뽑으면서 다시 한번 그가 살아나기를 간절히 기 도하였다. 62) 김 某 작전과장은 공비를 위해 피를 뽑은 것이 못마 땅한지 한마디 했다. “인정에 이끌리면 공비토벌이 되지 않습니다. 잘못하면 적들에 게 발뒤꿈치를 잡힐 수도 있소.” 다시 정신을 차린 이 某에게 차일혁은 솔직히 말했다. “당신은 의사니까 파상풍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거요. 최선을 다하고 있으나 결과는 모르겠소. 이현상의 거처와 있는 곳을 말하 지 않아도 괜찮소. 당신의 현재 상황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주시 오.” “당신들이 그토록 찾고 있는 이현상 동무는 이제 평당원으로 강 등되었소.” 그는 더듬더듬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 했다. 한동안 말을 하던 이 某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의 얼굴은 파 상풍으로 새파랗게 변해가고 있었다. 차일혁은 경찰의무관을 불 렀다. “이 자를 살려내야만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려내야 한다.” “이미 늦었습니다. 파상풍균이 온 몸에 퍼져 몇 시간을 넘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차일혁은 중국에 있을 때 보았던 민간요법이 생각나 돼지껍질 을 구해오게 했다. 중국에서는 파상풍에 걸리면 돼지껍질을 씌워 62) 이것은 지고한 살신성인의 정신을 몸소 실천한 것으로, 동료도 아닌 적에게 자신의 피를 뽑아준다는 것은 범부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놀라운 일이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