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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아! 지리산, 그리고 이현상 251 휴전이란 없소.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리라는 것을 기대하지 마시오. 나는 이미 당신들에게 생포되었을 때 죽은 거나 마찬가지 오. 정보를 얻으려는 미련을 버리고 당신 손으로 죽여주시오.” 차일혁은 그의 말투에서 보통 공비와는 달리, 그가 철저한 사상 무장과 자기 훈련으로 다져져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에 게 죽음이 가장 좋은 선물이고 안식이 될 것 같았다. 그의 사상은 바로 종교나 마찬가지이므로 더 이상의 설득과 회유는 필요치 않 은 듯 보였다. 차일혁은 권총을 꺼내어 그 속에 들어 있던 실탄 여덟 발 중 일 곱 발은 꺼내고 한 발을 남겨 그에게 건네주었다. “당신 소원이 죽는 것이라 해도 내 손으로 당신을 죽일 수는 없 소. 당신이 굳이 죽으려거든 당신 스스로 목숨을 끊으시오. 이 권 총 안에는 한 발의 실탄이 남아 있소. 스스로 목숨을 끊든지, 아니 면 나를 쏘든지 당신 마음대로 하시오.” 순간 연대장실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각 참모들은 놀라서 어쩔 줄 몰랐다. 남은 총알 한 발로 자결하는 것이 아니라, 연대장실 안에 있는 사람을 쏜다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모두 불안한 기색 이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권총을 들었다. 차일혁은 만약 그 한 발로 자기를 쏜다면 그것도 운명이려니 하는 생각이었다. 스스로의 운 명을 택하는 그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다. 그가 진실로 한 사상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면, 그의 죽음이 다른 어떤 죽 음에 못지않게 깨끗한 죽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도 차일혁도 죽이지 못하고 힘없이 총을 내려 놓았다. 59) 59)‘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의 수기’, 후암,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