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page

살아있는 한국 경찰의 혼 차일혁 총경 일대기 244 을 가진 618부대와 보아라부대는 묘한 라이벌로 부상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휴전이 성립되었지만, 지리산만은 총성이 멎지 않고 있는 최후의 결전장이었다. “지리산의 평정 없이는 남한의 평화가 없고, 이현상의 생포 없이는 지리산의 평정이 불가능하 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특별 담화가 있었고, 이현상을 직접 만날 용의가 있다는 담화도 있었지만,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1953년 8월 12일. 차일혁은 1대대장이 빨치산의 습격을 받고 행 방불명이 되었다는 비보를 접하였다. 본부 수색대장 김 某를 시켜 1대대가 주둔한 용강에 가서 1대대의 상황을 알아보게 하였다. 며 칠 전에 얼굴을 보았고 아침에도 전화로 상황보고를 받았기에 도 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1대대장은 전남 전투경찰대 대장시절 백아산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던 지휘관으로, 공비토벌에서 항상 선봉을 지켰다. 둥 근 얼굴에 단단한 체력을 가진 그는 성격이 괄괄하고 거침이 없 어, 18대대시절 부하였던 우 경감을 생각나게 했다. 다음날 떠나 라고 해도 듣지 않고 저녁에 출동했다가 공비들의 기습을 받고 장 렬하게 전사한 우 경감처럼 수차례에 걸쳐 그에게도 작전에 신중 을 기할 것을 당부하고 했었다. 그의 불같은 성격이 지리산 공비 토벌에서 최선봉에 적합할 것 같아 주공 부대인 우리 부대의 선봉 에 배치하긴 했으나, 차일혁은 내심 불안한 감이 없지 않았었다. 차일혁은 용강에 1대대를 주둔시키고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 지 쌍계사에 주둔하고 있던 618부대가 용강에 진출할 때까지 그 지역을 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러나 용강에 진입한 김 대 대장은 이미 그곳을 떠나 삼장 가까이 진출해 있었던 것이 화근이 었다. 이 지역에는 남경사 예하의 국군 56연대와 11경비대대가 작 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