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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국 경찰의 혼 차일혁 총경 일대기 240 정도로 호흡이 맞는 부하들이었다. 사령부 작전지시 18호에 의해 1연대는 운봉, 2연대는 남원, 주 천, 3연대는 순천, 5연대는 함양에 자리잡게 되었다. 차일혁은 남 원, 주천에서 1, 2, 3 대대를 편성했다. 2연대의 부연대장에는 학병 출신의 경남 진주가 고향인 강 某 경감이 부임했다. 1953년 7월 14일. 이하영 사령관의 후임으로 저돌적인 성격의 김 경무관이 부임했다. 거창 양민학살사건으로 인하여 군에서 경 찰로 옮겨온 그는 전북도경국장으로 경찰생활을 시작한 이래, 군 에서와 마찬가지로 밀어붙이기식의 저돌적인 지휘로 일선 경찰서 장 및 간부들을 아연케 하였다. 김 사령관은 부임하자마자 저돌적 인 자신의 성격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일선 우선주의를 표방하고 사령부 요원들을 대폭 축소하여 일선 연대에 배치하였다. 그는 모 든 연대의 본부를 공비가 있는 지점 1천 미터 이내에 배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서전사를 설치하여 서전사의 6천여 명의 병력과 1개 시(市) 12 개 군의 경찰병력 1만 2천명(의경 및 향방대원 포함)을 합한 1만 8천여 명의 병력을 공비토벌에 집중 투입한다는 것은 전시 효과 를 노린 측면이 없지 않았다. 치안국이 추산한 서남지구의 빨치산 은 1천 명 미만이었다. 1953년 8월 3일. 서전사 작전명령 6호가 하달되었다. 이 작전은 화개장을 포위하여 집중 공격한다는 의미에서 화개장작전이라 명 명되었다. 화개장은 51년 남부군단이 지리산에 전력을 가다듬은 곳으로, 빨치산들이 근처의 칠불암에 거점을 두고 화개지서를 여 러 번 습격하는 등 최후의 저항을 거듭하고 있었다. 2연대는 주공 (主攻)부대로 선정되어, 화개장 지구로 연대본부를 옮겨 공비들의 거점을 공격하게 되었다. 화개장은 경남과 전남을 잇는 도 경계에 있어 하동, 구례, 광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