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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국 경찰의 혼 차일혁 총경 일대기 236 “남한 각지의 빨치산은 53년이 되면서 1천명 미만으로 줄어들 고 있었다. 북한으로부터 보급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눈덮인 산을 헤매며 빨치산 활동을 한 것은 세계전사상(世界戰史上) 드문 일이 며, 3년 가까이 버틴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우리 나라의 지형상 빨치산이 가능한 곳은 지리산밖에 없는데 3년 넘 게 버티고 있는 것은 자의든 타의든 인근지역 주민들의 협조 없이 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빨치산들은 초기에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협조로 상당한 세력을 이룰 수 있었으나, 점차 군경의 토벌에 쫓 겨 다니면서 주민들과 멀어지게 되었다. 군경들이 강제로 빨치산 과 주민들을 분리시키기도 했지만, 빨치산들이 북한으로부터 전혀 보급이 없는 상태에서 주민들에게 민폐를 끼쳤기 때문이다. 점차 수가 줄어들면서 빨치산들은 주민들을 불신하게 되었고 주민들도 빨치산을 도우려 하지 않았다.” ❚서전사 2연대장으로, 독자적 작전 수행 1953년 2월 초부터 경무대에서도 이승만 대통령 주재 하에 내무 부장관을 비롯한 국회 및 여당의 중진과 경찰 수뇌부가 모여 지리 산지구 공비의 완전섬멸을 위한 회의를 거듭하였다. 56) 그 결과 이승만 대통령은 1. 후방 공비를 1년 이내에 평정할 것. 2. 신설되는 전투경찰은 군부의 간섭 없이 독자적으로 공비토벌 작전을 지리산에서 수행할 것. 3. 각 관계 도지사는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전투경찰사령관에 게 행정권을 이양하고, 공비 출현이 있을 경우 사령관에게 56) 본문은‘전북경찰 60년사’106쪽과‘아 ~ 살아 있다! 대한민국 경찰의 혼’681~682쪽 및‘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의 수기’224~237쪽을 재구성한 내용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