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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국 경찰의 혼 차일혁 총경 일대기 234 것이 실패의 원인으로 분석되었다. 공비토벌이 웬만큼 이루어지자 차일혁은 그동안 민원의 대상이 었던 의경의 수를 대폭 줄였다. 또한 전시체제와 병행하여 민원의 척결과 관내청소에 주력하였다. 소수 정예로 공비토벌에 주력하는 한편 솔선 행정으로 군민들과 하나가 되고자 노력하였다. 해가 바뀌어 1953년 1월 3일, 성수 지서주임이 지휘한 경찰대가 보급투쟁을 하던 임실군당 조직책과 임실군 총책을 생포하고 소 총 2정을 노획하였다. 이들을 임실경찰서로 압송하여 취조한 결 과, 지난해 12월 8일 사적지계로 작전을 벌인 결과, 외팔이 이 某 항미연대장이 다리에 중상을 입고 비밀 아지트에서 치료를 받다 가 출혈과다로 12월 25일 죽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가매장한 장소 는 성수산 불당골 부근이라고 했다. 차일혁은 오 某 사찰계장을 시켜 불당골을 수색케 하였다. 3시 간 동안의 수색으로 가매장된 외팔이 이 某의 시체를 발굴하였다. 시체는 지하 7척의 깊이에 미군 모포 5장으로 쌓여져 있었다. 미 군용 내의를 입고 있었으며, 평소 좋아하던 담배와 담배케이스, 쌀 다섯 말까지 함께 들어 있었다. 공비들은 외팔이 이 某를 영웅 으로 정중히 장사지냈다고 한다. 외팔이의 사살이 각계로 알려지고 1월 4일 전북 경찰공보 호외 (戶外)로 전 도민들에게 알렸다. 각 언론사의 기자들이 이 某의 사 망을 확인하기 위해 임실경찰서에 밀려왔다. 김 도경국장, 미 고 문관 힌클 소령, 국군남부경비사령관 이용문 준장, 치안국 전방지 휘소장 신 某 경무관 등이 방문했다. 이 일로 차일혁은 금성화랑 무공훈장, 오 某 사찰계장과 이 某 성수 지서주임은 은성화랑무공 훈장, 전 서원들에게 치안국장의 표창장이 전달되었다. 3월 10일. 임실출신 엄병학 국회의원이 차일혁을 방문했는데, 한동안 피난민의 비참한 생활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빨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