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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국 경찰의 혼 차일혁 총경 일대기 214 지만, 오십보 백 보야. 너는 정말 직업하나 잘 얻었구나. 그런데 나는 이게 뭐냐. 팔자에도 없는 기자나 하고 있으니.” 그는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면 전주 시내를 휘젓고 다녔다. 차일 혁은 만취한 그를 집으로 데리고 가서 재웠다. 1951년 11월 28일. 차일혁은 전 국장으로부터 무주경찰서장 발 령장을 받았다. “24시간 내로 부임해 그곳 치안을 확보하시오.” “국장님 행정이 서툰 저에게 18대대 보급담당 이근찬 경위와 작 전참모인 조명제 경위를 함께 데려가도록 조치해 주십시오.” 그들은 두 명 다 경상도 출신으로 행정능력이 뛰어난 부하들이 었다. 경찰서장으로 발령을 받았지만, 실제 공비토벌에 주력해야 하는 만큼 행정업무를 맡길만한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무주서장으로 발령을 받은 차일혁은 사람들을 만나 무주에 관 해 자세히 알아보았다. 그 가운데서도 박 某 서장의 전임자로, 무 주에서 공비토벌에 많은 전과를 올렸던 김두운 정읍서장을 만나 러 갔다. 김두운은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전북에서도 공비들의 준동이 가장 심한 무주서장과 정읍서장을 하면서, 절대포섭이라는 나름대 로의 빨치산 토벌작전을 전개해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다시 말해 총으로만 공비토벌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공비들이 스스로 귀 순해 오게끔 하는 것이 그의 전술이었다. 그는 작전지도 판독과 복격술53)이 뛰어나 산악지대를 부하들과 함께 뛰고 달렸다. 당시 의 경찰서장으로서 그를 능가할 만한 사람이 드물었다. “말이 경찰서장이지 의경들과 같이 공비토벌하는 것은 마찬가 지입니다. 제가 무주경찰서장으로 가서 제일 힘들었던 것이 바로 53) 일종의 유격전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