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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아! 지리산, 그리고 이현상 209 1951년 11월 14일. 전북도경 화약고가 알 수 없는 이유로 폭발 해 전주 시내는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거 의 없었다. 화약고 폭발사건으로 최고 책임자인 윤 도경국장은 이 날로 대기발령을 받게 되었다. “참으로 운이란 것을 알 수가 없구먼. 이틀 전 과음하여 출근하 지 않은 과장들을 일요일에 출근시켜 근신케 하려했는데, 만약 일 요일 그들이 출근하였더라면 화약고 폭발로 모두 즉사해 버렸겠 지. 나에게 근신당하지도 않고 목숨도 건졌으니 그들은 얼마나 운 이 좋은가. 반대로 나는 얼마나 운이 나쁜지..., 차 대장 아무 소리 말고 사표는 없던 걸로 하겠소. 내 아호를 따서 지은 철주부대도 이제 곧 해체될 거요. 차 대장도 너무 조급해 하지 말고 강물이 흐르듯 그렇게 흘러가시오.” 윤 국장은 차일혁이 며칠 전에 제출했던 사직서를 꺼내 찢어버 렸다. “아무쪼록 건강하시길 빕니다.” “차 대장 부대원들의 동요가 없도록 잘 지휘하시오. 한번 떨어 진 사기는 다시 살리기 어려우니 부하들을 잘 간수하시오. 곧 본 격적인 공비토벌이 있을 거요.” 윤 국장을 떠나보내고 차일혁은 부대로 돌아와 사물함을 정리하 였다. 정들었던 김근수 경위도 금산경찰서 경무계장으로 발령이 났 다. 부대원 중 다른 부대로 전출가는 것은 김 경위가 처음이었다. 18대대는 엄한 규율이 있어, 어느 누구도 다른 부대로 전출가지 않기로 굳게 맹세를 했었다. 이는 부대 초창기 해이한 전투경찰의 군기를 확립하기 위해 차일혁이 취한 조치였다. 당시 전투경찰은 군인과는 달리 근무 이탈하는 자가 많았다. 군대와는 달리 경찰은 사표만 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많았다. 차일혁은 18대대 창설 초기에 고창작전이 끝나고 사기를 높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