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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아! 지리산, 그리고 이현상 203 차일혁은 마을 사람들에게 사과를 하고 부하 대원들을 달래서 본부로 돌아왔다. 이로써 심곡리 주민들은 무사할 수 있었다. 운반해 온 시체들을 확인해 본 결과 의경 24명과 18대대 대원 3 명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빨치산들은 보통 경찰들의 시체를 발 견했을 때는 옷을 벗기고 위해를 가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혀 그런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57사단은 이현상 직속 의 부대로 기존의 빨치산들과는 행동 양태가 달랐다. 행방불명되었던 무주경찰서 의경 24명이 4일 만에 안성지서로 돌아왔다. 빨치산은 의경과 정식경찰을 구분해 의경들에게는 아무 죄도 없다며 정치학습을 이틀 동안 시킨 다음 모두 방면했다는 것 이다. 정식 경찰에 대해서는 악질 반동이라며 따로 감금시켰다고 했다. 포로가 되어 죽은 줄로만 알았던 의경들이 살아와서 안도의 숨을 쉬게 되었으나, 대원 3명의 안위(安危)를 알 수 없어 차일혁 의 마음은 무거웠다. 차일혁 부대의 본부가 있는 설천국민학교에서 구천동 전투로 산화한 전우들의 합동장례식이 거행되었다. 조총(弔銃)과 제문으 로 영령들을 위로하였다. 18대대가와 함께 장작의 불길이 타올라 전우들의 시신이 한 줌의 재로 변해갈 때 대원들은 모두 통곡을 했다. 차일혁은 항상 간직하고 있던 염주를 돌리면서 그들의 명복 을 빌었다. 29구의 영령들 앞에서 차일혁은 자신의 부대에 커다란 패배를 안겨준 이현상 만은 꼭 잡고야 말겠다는 굳은 맹세를 하였다. 비 록 적일망정 의경 24명을 살려준 은혜는 은혜대로, 복수는 복수대 로 되돌려 주겠다는 결심을 한다. 무주 구천동 전투는 차일혁이 이현상의 직속부대를 만나 싸운 첫 전투였으며, 공비 토벌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패배한 전투이 기도 하다. 이 날의 전투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당시 18대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