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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국 경찰의 혼 차일혁 총경 일대기 202 미 적들은 보이지 않았다. 전우들의 시신을 운반하면서 반드시 원 수를 갚겠다고 다짐하던 대원들은 삼공리의 주민 및 신대부락민 들을 그냥 둘 수 없다며 당장 죽여 버려야 한다고 흥분해 소리쳤 다. 며칠 전 작전을 개시할 때 이현상 부대가 이미 떠나버렸다는 나무꾼과 동네아낙들의 말에 속아 큰 화를 입었던지라 마을 주민 들을 그냥 둬서는 안 된다는 의견들이었다. 통비(通匪)분자라해서 주민들을 처벌한다면 결국 빨치산들을 이 롭게 할 뿐이라는 것을 차일혁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도 감 정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그 역시 그 마을을 완전히 없애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차일혁은 일단 심곡리에 들어가 마을 주민들을 모았다. 그러나 젊은 남자들은 전혀 없었고 노인과 여자들뿐이었다. 대원들은 거 의 흥분한 상태로 젊은 남자들은 모두 어디 갔냐고 다그쳤다. 마 을 주민들은 모두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모두들 통비분자들이라 고 재차 다그치자 노인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우리들에게 죄가 있다면 미련하고 멍청하여 조상대대로 내려 온 이곳을 떠나지 못한 것이며 다른 죄는 없습니다. 8개월 전 군 인들이 이곳에 진주하여 아녀자들을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우 리는 토벌대를 보면 여자들 걱정을 해야 하고, 빨치산들을 보면 젊은이들이 짐꾼으로 끌려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이곳을 떠나지 못해 이리저리 시달리는 우리들에게 죄가 있다면 다 죽이고 가시 오.” 노인의 처연한 하소연을 듣자 차일혁은 분노가 가라앉았고 오 히려 죄책감이 들었다. “얼마 전에 이곳 마을 사람들이 한 말을 믿고 많은 대원들이 공 비들에게 희생을 당해, 흥분해서 거친 인사를 한 점 용서하십시오. 절대 마을 사람들을 해치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