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page

3부. 아! 지리산, 그리고 이현상 199 퇴를 서둘렀다. 협곡을 따라 후퇴를 하던 중 차일혁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 다. 적들은 더 이상 추격하지 않고 물러났다. 그들이 계속 추격했 더라면 1중대는 완전히 전멸했을 것이고, 협곡 입구에서 포위망을 뚫기 위해 지원사격을 하던 차일혁과 부하들에게도 많은 피해를 입혔을 것이다. 김 중대장과 부하들이 쉽게 탈출할 수 있었던 것 은 아무래도 적들의 흉계인 것 같았다. 차일혁 부대를 전멸시키기 위해 기만술책을 쓴 것 같았다. 차일혁은 부하들에게 협곡으로 연결되는 설천으로 가지 말고 산 위로 오르도록 지시했다. 지칠 대로 지친 대원들은 평안한 길 을 놔두고 험한 산 위로 올라가라는 차대장의 명령에 불만인 듯 했다. 5부 능선을 타고 행군을 한다는 것은 차일혁 역시 쉽지 않 은 일이었다. 거칠봉을 지나 별안부락, 사선암골을 거쳐 아홉 시 간을 쉬지 않고 행군하여 무풍지서에 도착하였을 때 차일혁 일행 은 완전히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지서에는 차일혁 부대가 한밤중에 연락도 없이 들이닥치자 공 비로 오인하고 지서원들이 사격해와 몇 명의 대원이 부상을 입었 다. 간신히 사격을 멈추게 하였지만 대나무로 된 울타리 문을 열 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아무리 18대대라고 하여도 문을 열려고 하 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서원 하나가 합죽이라는 대원의 고향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 지서원은 며칠 전 오락회에 참석했다가 합죽 이를 기억한 모양이었다. 한 대원이 이북이라고 하자 지서원은 합 죽이의 목소리를 들어야겠다고 했다. 합죽이 정종화 대원이 직접 나가 말을 건네자 그때서야 문이 열렸다. 아홉 시간이 넘게 걸린 후퇴였지만 무사히 무풍지서로 돌아오 는 데에는 구천동에서 길안내를 자청하고 나선 소년의 도움이 컸 다. 차일혁은 그 소년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탄대를 풀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