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page

살아있는 한국 경찰의 혼 차일혁 총경 일대기 192 져 경찰서가 함락될 무렵에야 원군이 도착해 이현상 부대를 물리 쳤다. 10분만 지원부대가 늦었더라면 곡성경찰서는 함락되고 말았 을 것이다. 이현상은 통상적인 빨치산 전술을 무시한 채 정규전에 가까운 대담한 전술을 구사하고 있었고, 이를 잘 파악하고 있는 차일혁은 무주도 곡성처럼 대규모의 빨치산 공격을 받을 가능성 이 있음을 예상하고 있었다. 장수군 백우면 신암리에 근거를 두고 준동하던 장수군당위원장 박 某와 13명이 총기 14정을 가지고 귀순했다. 이들 중에는 전북 도당 간부가 3명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들은 전북도당의 작전계획 과 57사단과의 관계에 대해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덕유산에 있는 57사단은 전북도당과는 아무런 선이 닿지 않고 있었고 오히 려 전북도당 사령부에서는 57사단이 속히 자기들 구역인 전북을 떠나기를 원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귀순한 빨치산들로부터 정보를 입수한 도경에서는 18대대에 전 문을 보내 57사단이 조만간 철수할 조짐이니 때를 노려 후미를 공 격하라고 명령했다. 10월 6일. 김가전 전북지사가 급서했다. 장수, 진안 지역으로 공 비들의 동태를 파악하러 진안 덕태산 지역을 정찰하던 차일혁은 하루 늦게 김 지사의 급서비보를 듣고 슬픔에 잠겼다. 김가전은 일제시대 때 3・1운동에 참가하여 7개월의 옥고를 치 렀으며, 출옥 후 전주 신흥학교에서 인재들을 양성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이승만 대통령의 공직 권유를 몇 번이나 사양하다가 마지 못해 전북지사를 맡았다. 김 지사는 성질이 급한 차일혁을 항상 제자처럼, 아들처럼 감싸주곤 했다. 차일혁은 전투를 앞두고 영결 식에 갈 수 없어 대신 김근수 경위를 보내 조의를 표하였다. 김 지사의 영결식에 참석했던 김근수 경위는 낯익은 청년 하나 를 데리고 왔다. 김 지사가 평소에 총애하던 수행원 유도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