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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국 경찰의 혼 차일혁 총경 일대기 188 에도 버젓이 병력이동을 감행하고 있었다. 공비가 아니라 정규 인 민군을 상대하는 느낌이었다. 이들은 영동을 습격하고, 그 기세를 몰아 단숨에 설천을 삼키려는 듯했다. 잠복하고 있던 차일혁 부대는 그들이 계곡 속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려 중화기 공격을 퍼부었다. 갑작스런 공격에 공비들은 도주 하기 시작했다. 이병선 18대대장은 백전노장답게 원숙한 작전을 구상하여, 사살 82명, 무기 노획 80정의 전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차일혁 부대는 도경계를 넘어 충북으로까지 들어가 작전을 하였 기 때문에 전과를 내세울 수 없는 형편이었다. 오히려 충북도경의 최찬택 과장에게 도 경계를 넘은 사실에 대해 사과를 하고 부대본 부가 있는 설천국민학교로 돌아왔다. 나제통문에서 조우한 적들은 이현상 부대와는 계통이 다른 6지 대였다. 6지대는 남한에서 모집된 의용군들이 북한에서 재훈련을 받은 부대로, 8월 15일 김일성의 지령으로 남파되었다. 그들의 주 요 임무는 후방교란과 주보급로 공격이었다. 6지대는 이현상 부대 와 선을 이으려고 태백산맥을 타고 남하했으나 충북, 경북 도계에 서 국군에 의해 큰 타격을 입었다. 차일혁 부대는 기존의 공비들과 남하하는 6지대가 합류하려고 하는 중간지점에 자리 잡고 있었다. 처음 출동할 때에는 이현상의 남부군단 산하의 57사단만이 있다고 판단하고 작전을 구상했던 차일혁은 새로이 작전을 구상하게 되었다. 전주에 예비대로 남겨 두었던 36대대를 즉시 설천으로 오게 하였다. 그리고 이현상 직속 의 57사단과 남하하는 6지대가 합류하지 못하도록 작전을 구상하 였다. 차일혁은 먼저 6지대를 격파하기로 하였다. 북한에서 훈련 을 받고 인민군에 편입된 6지대의 구성원들은 사기가 왕성하나 아직 산악전에서는 서투른 면이 많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57사단은 6・25 전부터 이현상과 유격활동을 함께 해온 여순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