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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역사의 부름 앞에 183 전쟁 중에 맞은 추석명절은 여러 가지로 감회에 젖게 하였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이 풍년을 기뻐하며 오곡과 햇과일로 조상 께 감사드리던 팔월 한가위를 피난민 수용소에서 보내는 사람이 엄청났다. 가족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어야 할 명절임에도 불구하 고 부모형제를 잃고 뿔뿔이 흩어져 있는 집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차일혁은 전사한 동지들의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작은 정성이나 마 전하려고 박 경리주임을 불렀다. 박 경위와 최 경사 등이 이미 몇 푼씩 모아 유가족들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그는 가난한 살림 속에서도 유가족들을 잊지 않는 그들의 뜨거운 전우애를 느낄 수 있었다. 금산방면의 작전을 마치고 돌아온 손 보안과장이 차일혁 부대 를 방문하였다. 이 작전 초에 있었던 차일혁 부대원들의 사망에 대해 그를 너무 심하게 질책하였던 것이 미안해 차일혁은 그의 손 을 잡고 사과했다. 그는 자신의 작전 실수로 인해 차일혁 부대원 들이 죽은 것을 미안해했다. 한참 동안 작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 누면서 그들은 서로의 감정이 풀려, 친근한 벗처럼 느껴졌다. 국장 을 비롯한 도경간부들이 모여 회식하는 자리에서 차일혁이 작은 북을 치며 장단을 맞추는 것을 보고 손 과장은 “차 대장을 평소 야 생마로 생각했는데, 오늘부터는 생각을 바꿔야겠소.”하며 웃었다. 김만석 기자는 그동안 차일혁이 전투 틈틈이 써놓은 전투일지 와 진중 메모를 전북일보에 게재하자고 제안했다. 차일혁은 보안 상의 문제를 들어 발표할 수 없다고 거듭 거절했지만 그는 끈질기 게 발표를 졸랐다. 그동안 그는 차일혁이 틈틈이 전투 상황을 기 록하는 것을 보면서 의아한 눈으로 보곤 했었다. 그도 종군 기자 로서 많은 것을 취재하고 기록했지만, 실제 전투지휘관이 아닌 그 로서는 기록에 한계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