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page

2부. 역사의 부름 앞에 179 78정이었으며, 차일혁 부대의 피해는 전사 7명, 부상 8명이었다. 전남부대의 전과는 사살 114명, 생포 11명이었으며, 9명이 전사하 고 9명이 부상을 입었다. 차일혁 부대와 전남부대의 장비와 복장 을 비교할 때 차일혁 부대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대원들은 땀과 먼지에 찌들었고, 군복은 색이 바래서 누렇게 변해버렸고, 군화가 없어 짚신을 신고 있는 부하들도 더러 있었다. 과연 대한민국의 경찰이 짚신을 신고 싸웠다면 후세에 누가 믿을 것인가? 가마골 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작전 강평이 있었다. 치안국 장을 대리하여 모든 작전을 지휘한 최 경무관과 지리산지구 전투 경찰사령관 신 경무관 등이 참석하였다. 지리산지구 전투경찰사령 관 신 경무관은 차일혁에게 자기와 함께 빨치산 토벌을 하지 않겠 느냐고 물었다. 차일혁은 당장이라도 지전사(智戰司)로 옮겨 이현 상 부대와 다시 겨루어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진정한 상대 를 만난다는 것이야말로 무 부로서의 꿈이고 바램이었 다. 그러나 김 某가 지전사 205연대장을 맡고 있어서 선뜻 그쪽으로 옮길 수는 없었다. 17대대가 차일혁 부 대에 통합되었을 당시 둘 관계가 매우 어색했었다. 또 한 36대대를 창설하여 연대 단위의 부대를 차일혁에게 맡기고 부대 명을 자기 호 를 따서 철주부대라 명명한 윤 도경국장이 그를 지전사 로 보낼 리가 만무했다. ▲오늘날의 가마골 내려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