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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역사의 부름 앞에 177 다고 호언장담하고 있었다. 수복 1년이 가깝도록 가마골은 군경이 발조차 들여놓지 못한 지 역이었다. 노령산맥의 험준한 봉우리로 둘러싸인 가마골은 외곽고 지를 방어하기는 쉽지만, 공격은 힘든 지역이었다. 설사 외곽고지 를 점령해도 가마골로 들어가려면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숲을 지 나야 했다. 전남 보안과장이 지휘하는 전남 연합부대가 예정선까지 진출하 고 순창경찰서 부대가 복흥면을 지나 쌍치 외곽고지에 진출했다. 쌍치를 향하여 정예 18대대를 선봉으로 17대대, 36대대가 노도와 같이 달려갔다. 가마골 외곽고지 점령은 만만치 않았다. 용추봉, 용두봉 일대의 접전은 토벌 형식이 아니라 정규전에 가까웠다. 적들은 차일혁 부 대를 향해 박격포와 경기관총 사격을 퍼부었다. 전남 부대와 17대 대는 추월산으로 가는 퇴로를 막았고, 전남 특경대장이 지휘하는 부대와 36대대가 내장산으로의 퇴로를 막았다. 가마골 후방인 서 자봉 능선에는 순창경찰서 부대가 회문산으로 가는 퇴로를 막았 다. 적들은 완전 포위된 채 발악적인 반격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18대대가 적의 탄막을 뚫고 맨 먼저 고지를 점령하였다. 대대장 연락병이 쓰러지는 등 많은 희생을 감수하고 용추봉을 탈환하였 다. 17대대는 용두봉을 점령했다. 용추봉으로 부대 지휘소를 옮기 고 참호를 파고 하루 전과를 보고받았다. 전과는 적 사살 46명, 포로 16명, 소총 61정, 실탄 700발, 백미 1 가마였다. 차일혁 부대는 전사 7명, 부상 7명의 피해가 있었다. 부 상자 7명은 적의 포탄에 의한 중상이었다. 2중대를 역습해온 빨치산 돌격대장을 총으로 쏴 생포했는데, 그 자의 품안에서 차일혁 부대 36부대원의 유품이 나왔다고 2중대장 이 보고했다. 차일혁은 2중대장에게 명령을 내려 절대 감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