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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국 경찰의 혼 차일혁 총경 일대기 176 삼기 위해 그는 각 중대장들에게 점령을 명하였다. 17대대는 내장 산, 장군봉을, 18대대는 고당산과 신선봉을 맡겼다. 36대대는 예비 로 남겼다. 부대 지휘소는 내장지서에 정했다. 대원들은 빨치산 못지않게 능숙하게 험한 산을 기어올랐다. 음산한 비바람이 불어 고산지대의 여름 날씨는 초겨울을 연상케 했다. 녹음이 짙어 쌍안 경으로는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고, 무전기로 수시로 상황을 보고 받았다. 17대대와 18대대가 고지를 점령한 다음 예비대로 남겨두 었던 36대대를 그곳으로 진격시켰다. 다음날 부대 지휘소를 내장지서에서 신선봉으로 옮겼다. 17, 18 대대에 확보한 지점에서 적들이 휴식을 취하지 못하도록 연속적 인 공격과 포위망을 구축하라고 지시했다. 이틀 동안의 작전은 쌍 치면 가마골 작전을 위한 공격로를 개척하고 전진기지를 확보하 는 것이었다. 이 일대 적들을 섬멸시키지 않으면 쌍치면을 공격했 을 때 배후에서 기습을 당할 우려가 있었다. 적의 아지트를 파괴 하고, 적들이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철저한 수색을 전개하였다. 밤이 깊자 쌍치로 향하는 노령산맥 위에서 돌연 불꽃들이 일어 났다. 공비들의 봉화였다. 전남북 공비들의 소굴인 입암산, 국시 봉, 내장산, 장군봉, 회문산, 추월산, 용골산, 용추봉 등지에서 피 어올랐다. 불꽃들은 차례로 이어져 저 멀리 변산반도까지 이어졌 다. 교신을 위한 것인지 자기들의 힘을 과시하는 것인지 알 수 없 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경찰들의 공격으로 기아를 견디지 못하고 귀 순해 오는 공비들이 늘어났다. 생포 또는 귀순한 공비들에 의하면, 가마골에는 기포병단, 카츄사병단, 번개병단, 정읍군당 유격대, 순 창군당 등 완전무장한 450여명의 적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이 9・28 수복 전에 소지한 무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공비들은 모스크바는 함락되어도 가마골은 절대로 함락되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