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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국 경찰의 혼 차일혁 총경 일대기 170 나 그들과 직접 싸워본 결과 별 것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더욱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번 작전으로 무주, 장수, 거창 방면의 교통로가 다시 열리고 1 백 시간 이상 적의 수중에 있던 명덕리 일대는 치안이 복구되고 행정이 재개되었다. 이날 전과는 경기관총 1정, 60미리 박격포 1 문, 따발총 2정, M1소총 1정, 아지트 파괴 247개소, 양민 구출 50 명, 소 38마리였다. 노획한 소가 38마리인 것으로 보아 장계 부근 의 소는 모두 징발한 것 같았다. 경찰의 진격으로 미쳐 다 끌고 가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어 마치 우시장을 연상케 했다. 장수경찰 서에 노획한 소를 주인에게 찾아주라고 인계했다. 이 전투에서는 생포된 적이 없는 것이 특징이었다. 적들은 며칠 동안 명덕리를 점령하고 물자를 징발해서 퇴각을 준비해 왔었다. 경찰이 진주했을 때 그들은 빠른 속도로 도주해서 적의 규모에 비 해 아군에 의해 사살된 빨치산의 수는 적었다. 사살된 빨치산 69 명의 시체 중에는 국군 군복을 입고 있는 자들도 간혹 눈에 띄어 이들이 청주를 습격했던 자들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획 한 박격포 1문을 확인해 보니 205연대의 것이어서 돌려주었다. 205연대는 치안국 직할 부대로, 차일혁 부대에 비해 장비도 우수 하고 알게 모르게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 전투에서 차일 혁 부대의 진면목을 알게 되어 18대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빨치산에 포로가 되었다가 풀려난 경찰들의 말에 의하면, 이 작 전에는 이현상이 직접 참가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북 도당위원장 인 방 某는 명덕리 점령에 참가했는데, 그의 부대는 이제 이현상 의 지휘를 받게 된 것 같았다. 방 某는 약탈과 살상을 일삼아 그 의 간부 부하들이 하나, 둘 귀순해 와서 방 某의 최후가 얼마 남 지 않았었다. 그런데 방 某와는 대조적인 이현상의 남하로 소멸해 가던 빨치산은 새 힘을 얻은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