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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국 경찰의 혼 차일혁 총경 일대기 158 직속의 유격대로 편입되어 후퇴하는 경찰들에게 무기를 얻어 유 격대를 편성하던 것이 어제처럼 느껴졌다. 경각산에서 유격활동을 하다가 총상을 입고 천행으로 살게 되어 전투경찰대 토벌대장으 로 모습이 바뀐 것이다. 녹음이 짙어지면서 한동안 주춤했던 공비 들이 다시 준동하기 시작하였다. 1951년 6월 30일. 차일혁은 18대대에서 1개 중대를 차출하여 17 대대와 함께 고창 문수산으로 작전 수행차 떠났다. 국군이 일선으 로 복귀하고 방위대도 해체되고 없어서 출동 시에는 항상 예비대 를 남겨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차일혁은 대원들의 애조 띤 군가 ‘아내여 이 세상을 굳게 사세 요. 당신과 만날 때에는 백년해로 합시다’를 들으며 복막염 수술 이후 항상 병치레를 하는 부인과 막내아들을 생각했다. 눈에 스치 는 가족들의 모습에 약해지는 자신을 꾸짖었다. 자동차가 우희갑 동지가 전사한 정읍군 북면을 지날 때는 왠지 숙연해졌다. 차일혁 은 아직도 근처에 숨어 있을 공비들을 조만간 소탕하리라 다짐하 며 고창읍에 도착했다. 고창서장의 안내로 서장실에 들어가 사찰주임으로부터 공비들 의 동태에 대해 소상히 들었다. 적들은 작전 중 상부의 허가 없이 도경계를 넘을 수 없다는 경찰의 취약점을 이용해 고창에 인접한 황룡면, 삼계면, 전남 장성 수령산 541고지 등의 전남북 도계의 험 준한 준령에 은거하고 있었다. 또 고창군수로부터 지역 내 14개 면의 치안상태와 이에 따른 행정상의 어려움에 대해 들었다. 관내 심원면, 상하면, 해리면은 백일 전만 해도 미수복지였으나 차일혁 부대에 의해 수복된 곳이었다. 이미 지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군 수와 상하면 면장, 심원면 면장, 해리면 면장 등이 차일혁에게 감 사장을 전달했다. 감사장을 받고나서 차일혁은 문득 김 某 중대장이 떠올랐다. 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