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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역사의 부름 앞에 155 거처하는 곳에 잘못 발을 들여 놓은 농민들은 사령관을 위해하러 왔다는 누명을 쓰고는 허무하게 죽기 일쑤였다. 그는 자기의 거점이 발견된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농민들을 학살했고, 지난 4월 회문산에서 임실군 성수면으로 거점을 옮길 때는 도당위원장의 거처가 탄로난다며 주민들을 학살하였다. 이에 대해 도당 간부 하나가 그에게 “당 사업이 잘 되지 않는 것은 너 무나 많은 농민을 학살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자, 그는 오히려 “당과 인민을 위해서는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다.”고 강변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지난 달 장수, 덕유산, 계북면 등지에서 소위 보급 투쟁을 하면서 농가에 있는 식량을 모조리 훑었고, 한 농가 에 들어가서는 장롱을 뒤져 몇 벌 남아 있던 옷가지들마저 빼앗았 다. “당신들이 인민을 위한다면서 몇 벌 남은 옷가지마저 가져가 냐?”고 애원했으나 방 某는 무시해버렸다. 오히려 그 아낙이 가여 워서 그냥 가자고 했던 군당 간부는 패배주의자라는 욕을 먹고 강 등되었다. 강등된 군당 간부가 빨치산에 대해 회의를 품고 차일혁 부대에 5월 17일 귀순함으로써 방 某의 만행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주민들의 호응을 받지 못하는 유격전은 물을 떠난 물고기와 같 다. 전북도당은 민중의 호응을 얻지 못하는 약탈과 방화를 일삼는 무뢰배로 전락하여 그들의 행위에 염증을 느낀 많은 사람들이 귀 순해왔고 군경의 강력한 소탕전에 공비들은 쫓겨 다니기에 바빴다. 그러나 이현상의 남하로 그들의 활동은 새로이 고무되고 있었 다. 이현상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영웅시하고 있었다. 그를 영웅시하는 것은 빨치산들뿐만 아니라 군경토벌대조차 그러 했다. 이현상이 처음 지리산에서 유격대를 조직한 것은 1949년 6월이 었다. 여순반란사건의 주동자들이 처형된 후 오합지졸이 된 반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