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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역사의 부름 앞에 151 겠구먼.” 김 도경국장은 농을 섞어 흔쾌히 수락했다. 차일혁은 생포하거 나 귀순한 공비를 부대원으로 편입시켜 처음에는 많은 오해와 불 신을 받았지만, 전투를 하면서 그의 판단이 옳았음을 입증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과감히 부역자로 갇혀 있던 그들을 부대원으로 편입시키겠다고 건의하여 허락받을 수 있었다. 부역행위를 했든, 빨치산 활동을 했든 가능한 그들을 관대히 용 서하여 부대원을 만들 때 1석 3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다른 부대에서도 이와 같은 방법을 이용해 작전 에 커다란 효과를 거두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살기 위해서 부역을 하거나 빨치산 활동을 했을 뿐이다. 농민들이 쉽사리 빨치산의 선전에 넘어간 것도 따지고 보 면 그동안의 생활이 너무도 힘들었기 때문에 “이제 곧 잘살게 된 다.”는 사탕발림이 먹혀들었던 것이다. 관계기관에서도 빨치산에 대하여 토벌과 처벌만으로 처리하던 예에서 벗어나, 그동안의 죄과를 깊이 반성하는 사람들에게는 관 용을 베푼다는 쪽으로 조금씩 태도를 바꾸어가고 있었다. 전라북 도에서는 자신의 죄과를 반성한다는 성명서를 신문에 게재하는 것으로 일체 불문에 부치고 양민증을 발급해 주고 있었다. 그래서 연일 신문에는 성명서로 넘치고 있었다. 민심은 점차 빨치산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들의 선 전에 속아 많은 사람들이 자의 또는 타의로 동조했었지만, 전세가 그들에게 불리해지고 그들의 악랄한 모습이 드러남에 따라 국민 들은 그들에게서 등을 돌린 지 오래였다. 남한 각지에서 빨치산들 이 쓰고 있는 수법은 중국에서 공산당이 장개석을 몰아내는 데에 는 유용했었지만, 이 땅에서는 실패임이 드러나고 있었다. 인민의 부대로 자처하는 그들이 이번 춘궁기에 농민들이 파종용으로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