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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국 경찰의 혼 차일혁 총경 일대기 138 리를 질렀다. “이것 모두가 강제로 거둔 것이지?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했 어?” “지금의 부대 예산으로는 경비를 감당할 수 없어 궁여지책으로 기부금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당장 돌려주도록 하시오. 부대 살림이 힘들더라도 참고 맡은 임무를 수행해야 떳떳하지. 기부금을 거둔다면 우리 부대에 거는 기대와 신뢰는 그만큼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경찰이 시민들의 신 뢰를 잃는다면 어찌 경찰이라고 하겠어?” 늘어난 대원들을 먹이고 입히는 일은 전투보다도 오히려 어려 운 문제였다. 차일혁 부대는 연일 공비토벌에 신명을 다하고 있으 나, 예산부족으로 마음껏 활동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 부금을 받기보다는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이 마땅하다고 차 일혁은 생각했다. 물론, 18대대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 지만 경찰로서 국민의 일원으로서 맡은 임무를 수행한 것일 뿐, 돈까지 받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차일혁은 경리주임을 시켜 기 부금으로 받은 돈을 즉시 돌려주고 다시는 강제성 기부금을 걷지 말라고 지시했다. 칠보발전소 작전이 끝난 다음 치안국장이 표창장과 부상으로 30만원을 차일혁 부대에 줬지만 차일혁은 그 돈을 봉투째 이재민 구호금으로 내놓았었다. 전북일보는 차일혁이 이재민 구호금으로 내놓은 것에 대해 다 음과 같이 기사를 실었다. 49) 가진 곤핍을 무릅쓰고 흉폭한 공비와의 가열한 전투행정 속에서도 총 후 전재민의 비참한 생활에 뜨거운 동정을 보내온 아름다운 이야기가 49)‘신문에 난 전투기록 모음집’, 후암,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