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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역사의 부름 앞에 135 척후병의 보고로는 잠시 적의 습격이 있었으나 모두 물러갔다고 했다. 건너편 계곡에서 굉장한 소란이 있었던 것이다. 혼쭐이 난 배우들이 연극이고 뭐고 다 그만두겠다며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차일혁은 좌중을 돌아보며 결연한 자세로 말했다. “지금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에 있지만, 빨치 산과 우리 대원들이 관객으로서 하나 되어 모여 있는 감격적인 순 간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이 공연은 이념과 사상을 넘어선 뜨거운 민족애를 보여주는 뜻 깊고 역사적인 자리가 될 것입니다.” 차일혁이 말을 마치자, 숙연해진 장내 분위기를 깨는 정종하 순 경의 익살과 함께 다시 연극이 시작되었다. 흩어졌던 배우들은 다 시 무대로 모였고, 소품담당은 나무 위에 다시 올라가고, 손이 묶 인 빨치산 포로들은 다시 앞자리에 앉았다. 공연 중 가관인 것은 보초들의 반응이었다. 무대주변 경계를 서는 그들은 무대 쪽을 바 라보지 못한 채 산을 향해 총구를 내밀고 있었는데 관객이 웃으면 따라서 웃고 관객이 울면 따라서 울었다. 전옥의 마지막 독백이 흐르는 동안 울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앞줄에 앉은 빨치산 포로들도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다가 이 내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고, 이들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던 대원 들도 총구를 내려뜨리고 얼굴이 온통 눈물범벅이 되도록 울었다. 자리에 앉았던 18대대원들 중에는 엉엉 목 놓아 우는 자도 있었 다. 아들 손에 재판을 받는 가련한 조선의 어머니역을 하는 전옥 의 절규를 들으며 그들은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그 자리에는 좌도 없고 우도 없고, 토벌대도 없고 빨치산도 없었다. 오직 오랫 동안 고난에 찬 삶을 살고 있는 동포와 겨레만 있을 뿐이었다. 차일혁 대장은 그 누구보다도 동족이 이념으로 나뉘어 서로 죽이고 죽는 것을 가슴 아파했던 사람이다. 그렇기에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 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