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page

살아있는 한국 경찰의 혼 차일혁 총경 일대기 134 노래 끝에 여자 가극배우의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대원들의 긴 장을 풀어주었다. 무대의 열기가 점차 고조되고 있는데, 극 주인 공으로 분장을 마친 전옥이 차일혁에게 다가와 항의했다. “저기 등을 보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지요? 배우들은 등을 돌 린 관객이 있으면 공연을 하기 힘듭니다.” 전옥이 가리킨 것은 막사 한 켠에 감금해둔 빨치산 포로들이었 다. 그들도 공연을 보고 싶어 고개를 무대 쪽으로 자꾸 돌렸으나 보초병의 제지로 힐끔힐끔 눈동냥만 하고 있었다. 차일혁은 부하에게 빨치산 포로들을 무대 바로 밑 맨 앞줄에 앉 히라고 지시했다. 그 지시를 받은 대원은 깜짝 놀라 안 된다고 했 으나 차일혁은 다시 한번 명령했다. 그리하여 한 줄로 굴비처럼 포승에 엮여온 빨치산 포로들은 배우들 콧물 떨어지는 것 까지 볼 수 있는 무대 바로 밑 맨 앞줄 명당자리에 앉아 공연을 감상하게 되었다. 전옥은 ‘눈물의 여왕’이라는 별칭답게 눈물 연기, 슬픔을 표현하 는 연기가 일품인 배우였다. 특히 ‘눈나리는 밤’에서 전옥이 독백 연기하는 마지막 10분의 엔딩부분은 관객을 슬픔과 눈물의 도가 니로 몰아넣곤 했다. 흥겹고도 구슬픈 노래와 배우들의 목소리가 적막한 밤하늘에 울려 퍼지고 있는데, 갑자기 콩 볶는 듯한 총소리와 함께 불을 끄 라는 외침이 들렸다. 공연 중 느닷없이 빨치산의 기습공격이 있었 던 것이다. 무대 앞줄에 앉아있던 빨치산 포로들을 겨누던 총구가 무대 위로 향하자 배우들은 혼비백산 달아나기 시작했다. 어떤 단 원은 무대 밑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어떤 단원은 세트 속으로 숨는 등 온통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눈을 뿌리기 위해 나무 위로 올라 갔던 사람은 놀라 오줌을 싸서 눈 아닌 비를 뿌리기도 했다. 차일혁은 대원들과 배우들에게 침착하게 대응할 것을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