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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역사의 부름 앞에 133 전옥은 난감했다. 무대도 조명도 없는 곳에서 갑작스럽게 공연 을 하기란 어려웠다. 더구나 이곳은 불과 몇 분 전만해도 총격이 오가던 전쟁터였다. “백조가극단 배우들은 무대에서만 공연을 합니다.” 난감했던 전옥은 정중히 거절했다. 그러나 차일혁은 다시 한번 부탁하며 배우들이 연기를 펼치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최대한으로 무대와 조명, 마이크 시설을 준비해보겠노라고 약조했다. 전옥 단 장은 차일혁의 열정에 감복했다. 18대대가 극단 배우들의 생명을 구해준 것에 대한 감사 인사로 쾌히 공연을 승낙하게 되었다. 그 리하여 백조가극단은 예정에도 없는 공연을 올리게 된다. 그것도 한밤중에 언제 총알이 날아들지 모르는 전투지역에서 전투경찰대 원과 빨치산 포로들을 관객 삼아 무대를 올리게 되었다. 밤중의 즉석 공연이라 무대시설도 없었고 조명, 엠프 등의 장비 역시 갖추어지지 않았을 뿐더러 작전지역이라 큰 소리조차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단원들은 18대대 대원들이 임시로 설치 한 소나무 밑에 무대를 정한 후 눈을 뿌리기 위한 신문조각과 조 명으로 사용될 카바이트 불 다섯 개를 구하고 군용천막을 동원하 는 등 서둘러 엉성한 장비를 꾸렸다. 대원들은 모처럼 흥겨운 노래를 듣고 재미난 가극을 보게 되어 기대에 부풀었다. 당시 전황은 2천여명의 빨치산들과 18대대가 대 치하고 있는 극한 상황이었으나, 공연을 위한 분위기는 뜨겁게 고 조되었다. 드디어 막이 오르고 무대에 오른 가극배우의 구성진 노 래자락이 울려퍼졌다. “팔월이라 한가위, 달도 밝은데 이팔의 새악시의 가슴도 뛰네 아아~ 저 달 떼어 거울삼아 분세수하고 서울 가신 정든 님 마중 갈거나. 호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