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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국 경찰의 혼 차일혁 총경 일대기 132 갈재에 주둔하고 있었다. 갈재는 장성에서 전북 정읍으로 넘어오 려면 반드시 거쳐야하는 호젓하고 험준한 고령이었다. 이곳은 빨 치산부대가 이동하는 요충지였다. 이곳에서 차일혁 부대는 강력한 빨치산 부대인 왜가리 부대와 대치하며 철도와 갈재 밑으로 파고 드는 터널 두 개를 사수할 임무를 띠고 있었다. 일찍 야영에 들어가려던 차일혁의 지휘소에 정찰 수색조장의 급박한 보고가 들어왔다. 언덕 아래 잡목 숲 쪽에서 이상한 기척 을 느껴 가보니 소속을 알 수 없는 세 대의 트럭이 달려오고 있었 는데, 그때 잡목 숲에서 시커먼 그림자 서넛이 튀어나와 트럭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는 것이었다. 차일혁 부대의 수색대가 공포탄 을 쏘며 달려갔을 땐 이미 앞의 두 대의 트럭이 불타서 사상자가 난 상태였고, 마지막 트럭 한 대가 가까스로 위기를 넘겨 수색대 의 보호를 받으며 안전한 곳까지 피신하였다. 트럭에 휘날리던 깃발은 당대 이름을 날리던 백조가극단의 휘 장이었다. 백조가극단은 광주공연을 마치고 전주로 가던 중 갈재 부근을 통과하다가 갑작스럽게 공비의 습격을 받은 것이다. 공비 가 출몰하는 위험천만한 산자락길을 무모하게 다니다 생긴 변고 였다. 트럭 안에는 눈물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지닌 백조가극단의 단장 전옥과 김승호, 최남현, 황금심, 고복수, 원희옥, 김영준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타고 있었다. 하마터면 총격으로 죽을 뻔 했던 백조가극단 일행은 18대대의 호위를 받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차일혁은 부하들에게 공포와 추위에 떨고 있는 단원들을 잘 보 살펴주라고 이른 다음, 전옥 단장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전 옥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우리 대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서 공연을 해 줄 수 없겠습니 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