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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역사의 부름 앞에 123 만약 통하지 않으면 그대로 유치장에 집어넣었다. 경찰서 유치장 에는 암호를 몰라 잡힌 경찰들이 많이 있었다. 이러한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지만 청년방위군이 실제로 지역방위에 결정적 인 역할을 하고 있어서 경찰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청년방위군 연대장 김 某는 차일혁이 전주 청년방위 군 총무처장으로 있을 때 알던 자였고 다른 자들도 모두 후배들이 었다. 그러나 위계질서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청년방위군은 원래 편성목적이 경찰과 국군을 지원하고 보완하는 것이 그 목적 이었지 독자적으로 치안을 담당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님을 누구 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군수실에서 차일혁은 김외준 군수, 신도종 서장 후임으로 온 김 서장, 그리고 지방유지들을 만났다. 지방유지들은 수복 이후 아직 껏 하루도 총성이 그칠 날이 없었는데 이제야 편히 다리를 뻗고 잘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했다. 김 서장은 전임지인 부안에서는 공비토벌에 많은 전과를 거두어 주민들이 공덕비를 세울 정도였 다. 그러나 부안과 지형적인 조건이 완전히 다른 정읍에 와서는 그는 공비들에게 쫓겨 다니는 형국이었다. 정읍은 낮에는 대한민국, 밤에는 인민공화국이라 할 정도로 공 비들의 세력이 만만치 않았다. 열흘 전에는 경찰서 아래층까지 공 비들이 침입할 정도였다. 게다가 청년방위군이 경찰을 무시하고 독자적인 행동을 일삼았기 때문에 김 서장은 제대로 공비토벌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차일혁은 이 자리에서 조속한 시일 내에 공비토벌을 완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으나 이곳 정읍은 워낙 광대한 지역이므로 빈약 한 인원과 장비로 성공적인 작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주민들 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특히 지방유지들이 주민들에게 민심을 잃는 일은 삼가 달라고 당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