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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국 경찰의 혼 차일혁 총경 일대기 118 전단 뒷면에 이와 같이 인쇄하여 뿌리면 효과가 있다고 도경국 장이 즉석에서 문안을 작성하였고, 이 문안을 공식적으로 각 경찰 서와 전투경찰대에 공문으로 하달하였다. “차 대장도 이제 빨치산 토벌이 무력만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알 았나 보오.” “예. 국장님. 저희들은 용감히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루 속 히 치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력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 고 있습니다.” 김 국장은 작전 개시에 맞춰 많은 전단을 제작해 작전지역 곳곳 에 뿌릴 수 있게 하겠다고 덧붙였다. 차일혁은 많은 총과 실탄을 새로 보급 받은 것보다 한결 든든했다. 차일혁은 작전 중에 노획한 전리품 가운데 값진 것이 있어도 그 냥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태워버리곤 했다. 정읍 산내면 수복 때 공비들이 그 지방 특산물인 비단 명주와 무명을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것을 발견하고는 대원들을 시켜 태 워버리게 했다. 그것을 팔아서 부대경비에 보태 쓰든지 다른 사람 에게 나누어 줄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전투에서 그런 것까지 생각한다는 것은 사치에 가까운 일이라고 차일혁은 생각했다. 전투에 임하는 그가 전투 이외의 것에 신경을 쓴다는 것은 무리였다. 1951년 4월 15일. 전북에서도 으뜸가는 곡창이며 산물이 풍부 한, 그러나 지금은 계속되는 공비들의 출몰로 황폐해진 정읍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18대대가 출동하게 되었다. 차일혁 부대는 도청 앞에서 김의택 도경국장 겸 도 경비사령관의 격려사와 각급 기관장 및 지방 유지들의 환송식, 정읍 출신 김택출 국회의원의 간곡한 격려사를 듣고 30대의 트럭에 나누어 타고 우렁찬 군가로 사기를 돋우면서 정읍을 향하였다. 새벽부터 들판에 나와 일하는